<TABLE style='border-width:3; border-color:#ff8019; border-style:solid; ' bgcolor=#FFFDFA cellpadding=10 cellspacing=0 width='100%'><TR><TD><font color='#000000' face=''><TR><TD align='' style='line-height:140%;'><font color='#000000' face=''><b><font size=3>어부지리(漁父之利)</fon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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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align=middle bgColor=#fffeda><FONT color=red><BR><FONT color=#ff0000><STRONG>어부지리(漁父之利)<BR></STRONG><BR>漁:고기 잡을 어. 父:아비 부. 之:갈 지(…의) 利:이로울 리.<BR>[동의어] 어부지리(漁父之利), 방휼지쟁(蚌鷸之爭), 견토지쟁(犬 之爭), 전부지공(田不之功), 좌수어인지공(坐收漁人之功). [출전]《戰國策》〈燕策〉<BR></FONT> </FONT></TD></TR></TBODY></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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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align=left bgColor=#fef6ff><FONT color=#0000ff><br></font><FONT color=#0000ff>어부의 이득이라는 뜻으로, 쌍방이 다투는 사이에 제삼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득을 챙긴다는 말.</FONT><BR></TD></TR></TBODY></TABLE></DIV>
전국시대, 제(齊)나라에 많은 군사를 파병한 연(燕)나라에 기근이 들자 이웃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기다렸다는 듯이 침략 준비를 서둘렀다. 그래서 연나라 소왕(昭王)은 종횡가(縱橫家)로서 그간 연나라를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온 소대(蘇代)에게 혜문왕을 설득해 주도록 부탁했다.<BR>조나라에 도착한 소대는 세 치의 혀 하나로 합종책(合縱策)을 펴 6국의 재상을 겸임했던 소진(蘇秦)의 동생답게 거침없이 혜문왕을 설득했다.<BR>"오늘 귀국에 돌아오는 길에 역수(易水:연 조와 국경을 이루는 강)를 지나다가 문득 강변을 바라보니 조개[蚌蛤(방합)]가 조가비를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도요새[鷸(휼)]가 날아와 뾰족한 부리로 조갯살을 쪼았습니다. 깜짝 놀란 조개는 화가 나서 조가비를 굳게 닫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도요새가 '이대로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자, 조개도 지지 않고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아주지 않으면 너야말로 굶어 죽고 말 것이다'하고 맞받았습니다. 이렇게 쌍방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운수 사납게 이곳을 지나가던 어부에게 그만 둘 다 잡혀 버리고 말았사옵니다.<BR>전하께서는 지금 연나라를 치려고 하십니다만,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도요새이옵니다. 연 조 두 나라가 공연히 싸워 백성들을 피폐(疲弊)케 한다면, 귀국과 접해 있는 저 강대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되어 맛있는 국물을 다 마셔 버리고 말 것이옵니다."<BR>혜문왕도 명신으로 이름난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를 중용했던 현명한 왕인 만큼, 소대의 말을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BR>"과연 옳은 말이오."<BR>이리하여 혜문왕은 당장 침공 계획을 철회했다.</font></TD></TR></TABLE>
<TABLE style='border-width:3; border-color:#ff8019; border-style:solid; ' bgcolor=#FFFDFA cellpadding=10 cellspacing=0 width='100%'<TR><TD align='' style='line-height:140%;'><font color='#000000' face=''><b><font size=3>양약고구(良藥苦口) </font></b><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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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align=middle bgColor=#fffeda><FONT color=red><BR><FONT color=#ff0000><STRONG>양약고구(良藥苦口)<BR></STRONG><BR>良:좋을 량. 藥:약 약. 苦:괴로울 쓸 고. 口:입 구.<BR>[원말]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 [동의어] 충언역어이(忠言逆於耳), 간언역어이(諫言逆於耳), 금언역어이(金言逆於耳). [참조] 약롱중물(藥籠中物).<BR>[출전]《史記》〈留侯世家〉,《孔子家語》〈六本篇〉.<BR></FONT> </FONT></TD></TR></TBODY></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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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align=left bgColor=#fef6ff><FONT color=#0000ff> <BR></FONT><FONT color=#0000ff>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뜻으로, 충언(忠言)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BR></FONT></TD></TR></TBODY></TABLE> </DIV>
① 천하를 통일하고 동아시아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했던 진(秦)나라 시황제가 죽자 천하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간 학정에 시달려온 민중이 각지에서 진나라 타도의 기치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중 2세 황제 원년(元年:B.C. 209)에 군사를 일으킨 유방(劉邦:훗날의 한고조)은 역전(歷戰) 3년 만(B.C. 206)에 경쟁자인 항우(項羽)보다 한 걸음 앞서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입성했다.<BR>유방은 3세 황제 자영(子 )에게 항복을 받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호화찬란한 궁중에는 온갖 재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꽃보다 아름다운 궁녀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았다. 원래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유방은 마음이 동하여 그대로 궁중에 머물려고 했다. 그러자 강직한 용장 번쾌(樊 )가 간했다.<BR>"아직 천하는 통일되지 않았나이다. 지금부터가 큰일이오니 지체없이 왕궁을 물러나 적당한 곳에 진을 치도록 하시오소서."<BR>유방이 듣지 않자 이번에는 현명한 참모로 이름난 장량(張良)이 간했다.<BR>"당초 진나라가 무도한 폭정을 해서 천하의 원한을 샀기 때문에, 전하와 간은 서민이 이처럼 왕궁을 드실 수 있었던 것이옵니다. 지금 전하의 임무는 천하를 위해 잔적(殘敵)을 소탕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이옵니다. 그런데도 입정하시자 재보와 미색(美色)에 현혹되어 포악한 진왕(秦王)의 음락(淫樂)을 배우려 하신다면 악왕(惡王)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옵니다. 원래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忠言逆於耳利於行], 독약(양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毒藥苦於口而利於病]'고 하였나이다. 부디 번쾌의 진언을 가납(嘉納:권하는 말을 기꺼이 들음)하시오소서."<BR>유방은 불현듯 깨닫고 왕궁을 물러나 패상( 上:함양 근처)에 진을 쳤다.<BR>② 이 '양약고구'란 말은《공자가어(孔子家語)》에도 실려 있는데 요약해서 적으면 다음과 같다.<BR>"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 은나라 탕왕(湯王)은 간하는 충신이 있었기에 번창했고,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은 따르는 신하만 있었기에 멸망했다. 임금이 잘못하면 신하가, 아버지가 잘못하면 아들이, 형이 잘못하면 동생이, 자신이 잘못하면 친구가 간해야 한다. 그리하면 나라가 위태롭거나 망하는 법이 없고, 집안에 패덕(悖德)의 악행이 없고, 친구와의 사귐도 끊임이 없을 것이다."</font></TD></TR></TAB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