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지신(尾生之信)
미생지신(尾生之信)
尾:꼬리 미. 生:날 생. 之:갈 지(…의). 信:믿을 신. [동의어] 포주지신(抱柱之信). [출전]《史記》〈蘇秦列傳〉.《莊者》〈盜 篇〉 |
미생의 믿음이란 뜻. 곧 ① 약속을 굳게 지킴의 비유. ②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음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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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尾生高)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는 사나이였다. 어느 날 미생은 애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정시에 약속 장소에 나갔으나 웬일인지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생이 계속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생은 약속 장소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결국 교각(橋脚)을 끌어안은 채 익사하고 말았다. 전국 시대, 종횡가로 유명한 소진(蘇秦)은 연(燕)나라 소왕(昭王)을 설파할 때 신의 있는 사나이의 본보기로 미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같은 전국 시대를 살다간 장자(莊子)의 견해는 그와 반대로 부정적이었다. 장자는 그의 우언(寓言)이 실려 있는《장자》〈도척편(盜 篇)〉에서 근엄 그 자체인 공자와 대화를 나누는 유명한 도둑 도척(盜 )의 입을 통해 미생을 이렇게 비평하고 있다. "이런 인간은 책형( 刑:죄인을 기둥에 묶고 창으로 찔러 죽이던 형벌)당한 개나 물에 떠내려간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명목에 구애되어 소중한 목숨을 소홀히 하는 인간은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 |
미봉(彌縫)
미봉(彌縫)
彌:더할 많을 미. 縫:꿰맬 봉. [유사어] 고식(姑息). 임시변통(臨時變通). [출전]《春秋左氏傳》〈桓公五年條〉 |
빈 구석이나 잘못된 것을 그때 그때 임시 변통으로 이리저리 주선해서 꾸며 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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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환왕(桓王) 13년(B.C. 707)의 일이다. 환왕은 명목상의 천자국(天子國)으로 전락한 주나라의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정(鄭)나라를 치기로 했다. 당시 정나라 장공(莊公)은 날로 강성해지는 국력을 배경으로 천자인 환왕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왕은 우선 장공으로부터 왕실 경사(卿士)로서의 정치상 실권을 박탈했다. 이 조치에 분개한 장공이 조현(朝見:신하가 임금을 뵙는 일)을 중단하자 환왕은 이를 구실로 징벌군을 일으키고 제후(諸侯)들에게 참전을 명했다. 왕명을 받고 괵( ) 채(蔡) 위(衛) 진(陳)나라 군사가 모이자 환왕은 자신이 총사령관이 되어 정나라를 징벌하러 나섰다. 이런 일이 곧 천자(天子)의 자장 격지(自將擊之)는 춘추 시대 240여년 동안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윽고 정나라의 수갈(繡葛:하남성 내)에 도착한 왕군(王軍)은 장공의 군사와 대치했다. 공자(公子)인 원(元)은 장공에게 진언했다. "지금 좌군(左軍)에 속해 있는 진나라 군사는 국내 정세가 어지럽기 때문에 전의(戰意)를 잃고 있습니다. 하오니 먼저 진나라 군사부터 공격하면 반드시 패주할 것입니다. 그러면 환왕이 지휘하는 중군(中軍)을 혼란에 빠질 것이며 경사(卿士)인 괵공( 公)이 이끄는 채 위나라의 우군(右軍)도 지탱하지 못하고 퇴각할 것입니다. 이 때 중군을 치면 승리는 틀림없습니다." 장공의 원의 진언에 따라 원형(圓形)의 진(陣)을 쳤는데 이는 병거(兵車:군사를 실은 수레)를 앞세우고 보병(步兵)을 뒤따르게 하는 군진(軍陣)으로서 병거와 병거 사이에는 보병으로 '미봉'했다. 원이 진언한 전략은 적중하여 왕군은 대패하고 환왕은 어깨에 화살을 맞은 채 물러가고 말았다. [주] 자장격지(自將擊之) : 남을 시키지 않고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싸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