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작라(門前雀羅)
문전작라(門前雀羅)
門:문 문. 前:앞 전. 雀:참새 작. 羅:벌일 라. [원말] 문외가설작라(門外可設雀羅). [반의어] 문전성시(門前成市). [출전]《史記》〈汲鄭列傳〉. 백거이(白居易)의〈寓意詩〉 |
문 앞에 새그물을 친다는 뜻으로, 권세를 잃거나 빈천(貧賤)해지면 문 앞(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방문객의 발길이 끊어진다는 말.
|
전한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 급암(汲 )과 정당시(鄭當詩)라는 두 현신(賢臣)이 있었다. 그들은 한때 각기 구경(九卿:9개 부처의 각 으뜸 벼슬)의 지위에까지 오른 적도 있었지만 둘 다 개성이 강한 탓에 좌천 면직 재등용을 되풀이하다가 급암은 회양 태수(淮陽太守)를 끝으로 벼슬을 마쳤다. 이들이 각기 현직에 있을 때에는 방문객이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나 면직되자 방문객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한다. 이어 사마천(司馬遷)은《사기(史記)》〈급정열전(汲鄭列傳)〉에서 이렇게 덧붙여 쓰고 있다. "급암과 정당시 정도의 현인이라도 세력이 있으면 빈객(賓客)이 열 배로 늘어나지만 세력이 없으면 당장 모두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또 적공(翟公)의 경우는 이렇다. 적공이 정위(廷尉)가 되자 빈객이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붐볐다. 그러나 그가 면직되자 빈객은 금새 발길을 끊었다. 집 안팎이 어찌나 한산한지 '문 앞(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정도[門外可設雀羅]'였다. 얼마 후 적공은 다시 정위가 되었다. 빈객들이 몰려들자 적공은 대문에 이렇게 써 붙였다.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곧 사귐의 정을 알고 [一死一生 卽知交情(일사일생 즉지교정)]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알며 [一貧一富 卽知交態(일빈일부 즉지교태)]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함에 곧 사귐의 정은 나타나네 [一貴一賤 卽見交情(일귀일천 즉현교정)] |
문전성시(門前成市)
문전성시(門前成市)
門:문 문. 前:앞 전. 成:이룰 성. 市:저자 도시 시가 시. [유사어] 문전여시(門前如市). 문정여시(門庭如市). [반의어] 문외가설작라(門外可設雀羅). 문전작라(門前雀羅). [출전]《漢書》〈孫寶傳〉〈鄭崇傳〉 |
문 앞이 저자(市]를 이룬다는 뜻으로, 권세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붐빈다는 말.
|
전한(前漢) 말, 11대 황제인 애제(哀帝:B.C. 6∼1) 때의 일이다. 애제가 즉위하자 조정의 실권은 대사마(大司馬:국방 장관) 왕망[王莽:훗날 전한을 멸하고 신(新)나라를 세움]을 포함한 왕씨 일족으로부터 역시 외척인 부씨(傅氏:애제의 할머니), 정씨(丁氏:어머니) 두 가문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당시 20세인 애제는 동현(董賢)이라는 미동(美童)과 동성연애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충신들은 간했으나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그중 상서 복야(尙書僕射:장관) 정숭(鄭崇)은 거듭 간하다가 애제에게 미움만 사고 말았다. 그 무렵, 조창(趙昌)이라는 상서령(尙書令)이 있었는데 그는 전형적인 아첨배로 왕실과 인척간인 정숭을 시기하여 모함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애제에게 이렇게 고했다.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정숭의 집 '문 앞이 저자를 이루고 있사온데[門前成市]' 이는 심상치 않은 일이오니 엄중히 문초하시오소서." 애제는 즉시 정숭을 불러 물었다. "듣자니, 그대의 '문전은 저자와 같다[君門如市]'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예, 폐하. '시의 문전은 저자와 같사오나[臣門如市]' 신의 마음은 물같이 깨끗하옵니다. 황공하오나 한 번 더 조사해 주시 오소서." 그러나 애제는 정숭의 소청을 묵살한 패 옥에 가뒀다. 그러자 사례(司隷)가 상소하여 조창의 참언(讒言)을 공박하고 정숭을 변호했으나 애제는 손보를 삭탈관직(削奪官職)하고 서인(庶人)으로 내쳤다. 그리고 정숭은 그 후 옥에서 죽고 말았다. [주] 삭탈 관직 : 죄 지은 벼슬아치의 벼슬과 품계[品階:직품(職品)과 관계(官階)]를 빼앗고 사판(仕版:벼슬아치의 명부)에서 깎아 버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