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축록(中原逐鹿)
중원축록(中原逐鹿)
中:가운데 중. 原:근원 들 벌판 원. 逐:쫓을 축. 鹿:사슴 록. [준말] 축록(逐鹿). [동의어] 각축(角逐). [유사어] 중원장리(中原場裡), 중원석록(中原射鹿). [출전]《史記》〈淮陰侯列傳> |
중원[天下]의 사슴[帝位]을 쫓는다는 뜻. 곧 ① 제위(帝位)를 다툼. ② 정권을 다툼. ③ 어떤 지위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함. |
한(漢)나라 고조(高祖) 11년(B.C. 196), 조(趙)나라 재상이었던 진희(陳 )가 대(代:산서성) 땅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고조는 군사를 이끌고 토벌에 나섰다. 그 틈에 진희와 내통하고 있던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이 도읍 장안(長安)에서 군사를 일으키려 했으나 사전에 누설되어 여후(呂后:고조의 황후)와 재상 소하(蕭何)에게 모살 당하고 말았다. 이윽고 난을 평정하고 돌아온 고조는 여후에게 물었다. "한신이 죽기 전에 무슨 말을 하지 않았소?" "괴통( 通)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분하다고 하더이다." 괴통은 제(齊)나라의 언변가로서 고조 유방이 항우와 천하를 다투고 있을 때 제왕(齊王)이었던 한신에게 독립을 권했던 사람이다. 그 후 고조 앞에 끌려 나온 괴통은 조금도 겁내는 기색 없이 당당히 말했다. "그때 한신이 신의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날 폐하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고조는 크게 노했다. "저놈을 당장 삶아 죽여라!" 그러자 괴통은 이렇게 항변했다. "폐하, 신은 전혀 삶겨 죽을 만한 죄를 진 적이 없나이다. 진(秦)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각지에 영웅 호걸들이 일어 났사옵고, 진나라가 사슴[鹿:帝位]을 잃음으로 해서 천하는 모두 이것을 쫓았던[逐] 것이오며, 그중 키 크고 발빠른 걸물(傑物:고조 유방을 가리킴)이 이것을 잡았던 것이옵니다. 그 옛날 대악당인 '도척(盜 )의 개가 요(堯) 임금을 보고 짖었다[ 狗吠堯]'고 해서 요 임금이 악인이라 짖은 것은 아니옵니다. 개란 원래 주인이 아니면 짖는 법이온데 당시 신은 오직 한신만 알고 폐하를 몰랐기 때문에 짖었던 것이옵니다. 그런데 천하가 평정된 지금 난세에 폐하와 마찬가지로 천하를 노렸다 해서 삶아 죽이려 하신다면 이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통촉하시옵기를…‥." 빈틈없는 항변에 할 말을 잃은 고조는 괴통을 그냥 놓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주] 요 : 중국 고대의 이상적 성군(聖君). 도척 : 춘추 시대, 성인(聖人) 공자(孔子)와 같은 시대를 살다 간 같은 노(魯)나라 사람으로 큰 도둑. 도당 9000여 명과 늘 전국을 휩쓸며 같은 악행(惡行)을 일삼음으로 해서 대악당(大惡黨)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함. |
▷중석몰촉(中石沒鏃)
중석몰촉(中石沒鏃) 中:가운데 맞을 중. 石:돌 석. 沒:잠길 몰. 鏃:화살 촉. [원말] 석중석몰촉(射中石沒鏃). [동의어] 석석음우(射石飮羽), 석석몰금음우(射石沒金飮羽), 웅거석호(熊渠射虎). [유사어] 일념통암(一念通巖),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출전]《史記》〈李將軍專〉,《韓詩外專》〈卷六〉 |
쏜 화살이 돌에 깊이 박혔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전력을 다하면 어떤 일에도 성공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 |
① 전한(前漢)의 이광(李廣)은 영맹한 흉노족의 땅에 인접한 농서[ 西:감숙성(甘肅省)] 지방의 무장 대가(武將大家) 출신으로, 특히 궁술(弓術)과 기마술이 뛰어난 용장이었다. 문제(文帝) 14년(B.C. 166), 이광은 숙관(肅關)을 침범한 흉노를 크게 무찌를 공으로 시종 무관이 되었다. 또 그는 황제를 호위하여 사냥을 나갔다가 혼자서 큰 호랑이를 때려잡아 천하에 용명(勇名)을 떨치기도 했다. 그 후 이광은 숙원이었던 수비 대장으로 전임되자 변경의 성새(城塞)를 전전하면서 흉노를 토벌했는데 그때도 늘 이겨 상승(常勝) 장군으로 통했다. 그래서 흉노는 그를 '한나라의 비장군(飛將軍)'이라 부르며 감히 성해를 넘보지 못했다. 어느 날, 그는 황혼 녘에 초원을 지나다가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를 발견하고 일발필살(一發必殺)의 신념으로 활을 당겼다. 화살은 명중했다. 그런데 호랑이가 꼼짝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화살이 깊이 박혀 있는 큰돌이었다. 그는 제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쏘았으나 화살은 돌에 명중하는 순간 튀어 올랐다. 정신을 한데 모으지 않았기 때문이다. ②《한시외전(韓詩外專)》에도 초(楚)나라의 웅거자(熊渠子)란 사람이 역시 호랑이인 줄 알고 쏜 화살이 화살 깃까지 묻힐 정도로 돌에 깊이 박혔다[射石飮羽]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