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style='border-width:3; border-color:#ff8019; border-style:solid; ' bgcolor=#FFFDFA cellpadding=10 cellspacing=0 width='100%'><TR><TD align='' style='line-height:140%;'><font color='#000000' face=''>▷<b><font size=3>호가호위(狐假虎威) </font></b><DIV align=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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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align=middle bgColor=#fffeda><FONT color=red><STRONG>호가호위(狐假虎威)<BR></STRONG><BR>狐:여우 호. 假:거짓 가. 虎:범 호. 威:위엄 위<BR>[준말] 가호위(假虎威). [동의어] 가호위호(假虎威狐)<BR>[출전] ≪戰國策≫ 〈楚策〉</FONT></TD></TR></TBODY></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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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align=left bgColor=#fef6ff><FONT color=#0000ff>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어 다른 짐승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남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림에 비유.<BR></FONT></TD></TR></TBODY></TABLE> </DIV>
<P>전국시대인 기원전 4세기 초엽, 초(楚) 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선왕은 위(魏:梁) 나라에서 사신이 왔다가 그의 신하가 된 강을(江乙)에게 물었다.<BR>"위나라를 비롯한 북방 제국이 우리 재상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오?"<BR>"그렇지 않사옵니다. 북방 제국이 어찌 일개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 따위를 두려워하겠나이까. 전하, 혹 '호가호위'란 말을 알고 계시옵니까?"<BR>"모르오."<BR>"하오면 들어 보시오소서. 어느 날 호랑이한테 잡아먹히게 된 여우가 이렇게 말했나이다. '네가 나를 잡아먹으면 너는 나를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로 정하신 천제(天帝)의 명을 어기는 것이 되어 천벌을 받게 된다. 만약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당장 내 뒤를 따라와 보라구. 나를 보고 달아나지 않는 짐승은 단 한 마리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호랑이는 여우를 따라가 보았더니 과연 여우의 말대로 만나는 짐승마다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짐승들을 달아나게 한 것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였는데도 호랑이 자신은 그걸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하옵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지금 북방 제국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소해휼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초나라의 군세(軍勢), 즉 전하의 강병(强兵)이옵니다."<BR>이처럼 강을이 소해휼을 폄(貶)하는 이유는 아부로 선왕의 영신( 臣: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이 된 강을에게 있어 왕족이자 명재상인 소해휼은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font></TD></TR></TABLE>
<TABLE style='border-width:3; border-color:#ff8019; border-style:solid; ' bgcolor=#FFFDFA cellpadding=10 cellspacing=0 width='100%'><TR><TD align='' style='line-height:140%;'><font color='#000000' face=''>▷<b><font size=3>한단지몽(邯鄲之夢) </fon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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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bgColor=#a2a433 border=0 cellSpacing=1 width="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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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align=middle bgColor=#fffeda><FONT color=red><STRONG>한단지몽(邯鄲之夢)<BR></STRONG>邯:땅 이름 한. 鄲: 땅 이름 단. 之:갈 지(…의). 夢:꿈 몽.<BR><BR>[동의어] 한단지침(邯鄲之枕), 한단몽침(邯鄲夢枕), 노생지몽(盧生之夢), 일취지몽(一炊之夢), 영고일취(榮枯一炊), 황량지몽(黃粱之夢)<BR>[출전] 심기제(沈旣濟)의 ≪枕中記≫</FONT></TD></TR></TBODY></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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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align=left bgColor=#fef6ff><FONT color=#0000ff>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음과 영화(榮華)의 헛됨의 비유.<BR></FONT></TD></TR></TBODY></TABLE> </DIV>
<P>당나라 현종(玄宗)때의 이야기이다. 도사 여옹이 한단[하북성(河北省)내]의 한 주막에서 쉬고 있는데 행색이 초라한 젊은이가 옆에 와 앉더니 산동(山東)에서 사는 노생(盧生)이라며 신세 한탄을 하고는 졸기 시작했다.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양쪽에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내 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들었다. 노생이 꿈속에서 점점 커지는 그 베개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 보니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있었다.<BR>노생은 최씨(崔氏)로서 명문인 그 집 딸과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순조롭게 승진했다. 경조윤(京兆尹:서울을 다스리는 으뜸 벼슬)을 거쳐 어사대부(御史大夫) 겸 이부시랑(吏部侍郞)에 올랐으나 재상이 투기하는 바람에 단주 자사(端州刺史)로 좌천되었다. 3년 후 호부상서(戶部尙書)로 조정에 복귀한 지 얼마 안 되어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그 후 10년간 노생은 황제를 잘 보필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한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역적으로 몰렸다. 변방의 장군과 모반을 꾀했다는 것이다. 노생은 포박 당하는 자리에서 탄식하여 말했다.<BR>"내 고향 산동에서 땅뙈기나 부쳐먹고 살았더라면 이런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애써 벼슬길에 나갔는지 모르겠다. 그 옛날 누더기를 걸치고 한단의 거리를 걷던 때가 그립구나.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BR>그는 칼을 들어 자결하려 했지만 아내와 아들이 말리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 노생과 함께 잡힌 사람들은 모두 처형당했으나 그는 환관(宦官)이 힘써 준 덕분에 사형을 면하고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수년 후 원죄( 罪)임이 밝혀지자 황제는 노생을 소환하여 중서령(中書令)을 제수(除授)한 뒤 연국공(燕國公)에 책봉하고 많은 은총을 내렸다. 그후 노생은 모두 권문세가(權門勢家)와 혼인하고 고관이 된 다섯 아들과 열 손자를 거느리고 행복한 만년을 보내다가 황제의 어의(御醫)가 지켜보는 가운데 80년의 생애를 마쳤다.<BR>노생이 깨어 보니 꿈이었다. 옆에는 여전히 여옹이 앉아 있었고 주막집 주인이 짓고 있는 기장밥도 아직 다 되지 않았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여옹은 웃으며 말했다.<BR>"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라네."<BR>노생은 여옹에게 공손히 작별 인사를 고하고 하단을 떠났다.</font></TD></TR></TAB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