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생가외(後生可畏)
후생가외(後生可畏) 後: 뒤 후. 生:날 생. 可:가히 가. 畏:두려울 외. [출전] ≪論語≫ 〈子罕篇(자한편)〉 |
젊은 후배들은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 곧 젊은 후배들은 선인(先人→先生)의 가르침을 배워 어떤 훌륭한 인물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가히 두렵다는 말. |
춘추 시대의 대철학자 사상가인 성인(聖人) 공자는 말했다. "'젊은 후배들은 두려워할 만하다[後生可畏].' 장래에 그들이 지금의 우리를 따르지 못하리라고 어찌 알 수 있겠는가[焉知來者之不知今也]? 그러나 40세, 50세가 되어도 세상에 이름이 나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바 없느니라." [주] '후생가외'는 공자가 제자 중 학문과 덕행이 가장 뛰어난 안회[顔回:자는 자연(子淵), B.C. 521∼490]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함. |
▶화씨지벽(和氏之璧)
화씨지벽(和氏之璧) 和:화할 화. 氏:각시 씨. 之:갈 지(…의). 璧:둥근 옥 벽.
[준말] 화벽(和璧). [동의어] 변화지벽(卞和之璧) [유사어] 완벽(完璧). 연성지벽(連城之璧) [참조] 완벽(完璧). [출전] ≪韓非子≫ 〈卞和〉 |
전국 시대, 초(楚)나라에 변화씨(卞和氏)란 사람이 산 속에서 옥(玉)의 원석을 발견하자 곧바로 여왕에게 바쳤다. 여왕이 보석 세공인(細工人)에게 감정시켜 보니 보통 돌이라고 한다. 화가 난 여왕은 변화씨를 월형(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에 처했다. 여왕이 죽은 뒤 변화씨는 그 옥돌을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왼쪽 발뒤꿈치를 잘리고 말았다. 무왕에 이어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씨는 그 옥돌을 그러안고 궁궐 문 앞에서 사흘 낮 사흘 밤을 울었다. 문왕이 그 까닭을 묻고 옥돌을 세공인에게 맡겨 갈고 닦아 본 결과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영롱한 모습을 드러냈다. 문왕은 곧 변화씨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이 명옥을 '화씨지벽'이라 명명했다. 그 후 화씨지벽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손에 들어갔으나 이를 탐내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이 15개의 성(城)과 교환하자는 바람에 한때 양국간에는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에 연유하여 화씨지벽은 '연성지벽(連城之壁)'이라고도 불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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